하루아침에 내가 누구인지,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이죠. 우리는 종종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까먹거나 방금 한 말을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겪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깜박함과 달리, 기억 상실증(Amnesia)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조차 잊게 만드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과 일상을 이어주는 끈이기에,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신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뇌 속 특정 부위의 손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억은 뇌에서 어떻게 저장되고, 어떤 이유로 상실되는 걸까요?
- 기억의 구조
단기 기억 vs 장기 기억
우리의 기억은 크게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기 기억은 몇 초에서 몇 분 정도 정보를 유지하는 임시 저장고로, 용량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 듣는 전화번호를 머릿속으로 반복하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리는 경험이 이에 해당합니다. 단기 기억은 이처럼 지속 시간도 짧고 금세 사라지기 쉽습니다.
반면 장기 기억은 오랫동안 보존되는 기억입니다. 한 번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 정보는 수시간, 수년, 때로는 평생 동안 유지될 수 있으며 저장 용량에도 사실상 한계가 없습니다.
단기 기억에 비해 장기 기억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오래 지속되지만, 단기 기억의 내용이 자동으로 모두 장기 기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 통합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됩니다. 이 통합 과정에는 뇌의 특정 부위들이 관여하는데, 그중에서도 해마라는 구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 해마의 역할
기억 생성과 전환
해마는 그 생김새가 바다말(해마)을 닮아 이름 붙은 뇌의 부위로, 대뇌변연계에 속하는 작은 기관입니다. 사람의 해마는 좌우 뇌에 한 쌍 있으며, 관자놀이 안쪽의 측두엽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조그마한 해마가 바로 우리의 기억 형성에 핵심적인 관문 역할을 합니다. 해마는 순간순간 들어오는 단기 기억 정보를 받아들여 이를 장기 기억으로 전환(통합)시키는 중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해마가 제 기능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는데, 실제로 양쪽 해마가 모두 손상되면 명시적 기억(일화나 사실에 대한 기억)의 형성이 불가능해집니다. 해마는 또한 공간 기억과 학습, 감정적인 기억 형성에도 관여하여, 종합적으로 경험을 기억으로 만드는 데 필수적인 뇌 구조입니다.
- 해마 손상 시 증상
기억상실 증상
그렇다면 해마에 손상이 생기면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요? 가장 뚜렷한 영향은 기억 상실증입니다. 특히 해마가 양측 모두 심하게 손상되었을 때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 즉 선행성 기억상실이 발생합니다. 이는 사고나 질병으로 해마를 잃은 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간단히 말해 손상 이후에 일어난 일을 새롭게 기억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잠깐 시간이 지나면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처럼 해마 손상 이후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는 상태가 선행성 기억상실입니다.
해마 손상은 또한 이미 가지고 있던 기억을 잃어버리는 현상, 즉 역행성 기억상실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뇌 손상 이전 기간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인데, 주로 손상 직전의 비교적 최근 기억들이 취약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해마가 손상되어도 모든 종류의 기억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마는 주로 사건이나 사실을 기억하는 명시적 기억을 담당하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나 악기 연주와 같은 기술 습득 기억(절차적 기억)은 해마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기술을 배웠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는 못하는 독특한 현상을 보이곤 합니다.
- 현대인의 기억력 저하와 해마 기능
스트레스, 수면 부족, 과로
해마가 눈에 띄게 손상되면 극단적인 기억 상실을 불러오지만, 현대인들은 해마 기능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기억력 저하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과로 같은 만성적인 생활 요인이 해마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이러한 요인들이 쌓이면 젊은 나이에도 기억력이 둔해지고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억을 지키기 위한 실용적 방안
해마와 기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기억력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해마를 건강하게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다행히도 생활습관을 관리하면 해마 기능을 보호하고 향상할 수 있습니다. 20~30대 직장인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억력 보호 조언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 충분한 수면 확보: 매일 7~8시간의 양질의 수면을 취해 뇌가 낮 동안 학습하고 겪은 정보를 정리하고 저장할 시간을 주세요. 수면 중 해마에서는 낮에 형성된 기억들을 재활성화하여 장기 기억으로 통합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연구에 따르면 학습 후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않으면 이러한 기억 통합 과정이 방해받는다고 합니다.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들이면 다음 날 머리가 맑고 기억력이 향상되는 효과를 느낄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 - 스트레스 관리: 만성 스트레스는 해마 신경세포를 손상하고 기억력을 감퇴시키므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심리적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상이나 요가, 산책 등의 이완 활동을 통해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세요. 스트레스를 효율적으로 해소하면 해마의 위축을 막고 기억력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규칙적인 운동> - 규칙적인 운동: 신체 활동은 뇌 건강에 여러모로 이롭습니다. 특히 유산소 운동은 뇌유래신경성장인자(BDNF) 분비를 늘려 해마 신경세포의 성장을 돕고 시냅스 연결을 강화합니다. 실제로 1년간의 규칙적인 운동 프로그램을 통해 중·노년층의 해마 부피가 증가하고 기억력이 개선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뇌에 지속적인 자극> - 뇌에 지속적인 자극 주기: 해마는 쓰면 쓸수록 기능이 향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독서, 암기, 퍼즐 풀이 같은 지적 활동을 꾸준히 하면 해마를 자극하여 인지 기능과 기억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업무 중에도 짬을 내서 머리를 식히고 새로운 정보를 복습하거나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해마의 건강을 지키고 기억력을 향상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은 우리의 삶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을 때부터 해마 건강에 신경 쓰고 생활습관을 개선한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소중한 기억들을 또렷하게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나를 내일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부터 내 뇌와 해마를 건강하게 돌봐주세요.